[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45> 연산동 고분군 M3호분 출토 검릉형행엽(劍菱形杏葉)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45> 연산동 고분군 M3호분 출토 검릉형행엽(劍菱形杏葉)
Blog Article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은 일상의 소박함 속에서도 빛을 발해왔다. 신석기시대 토기의 빗살무늬부터 조선시대 갓의 단정함에 화려한 갓끈을 더하는데 이르기까지, 절제와 세련미가 공존하는 전통은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이러한 감각은 고대의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던 말(馬)의 장식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말을 장식하는 데 사용한 다양한 종류의 행엽. 위 사진부터 심엽형행엽(연산동 고분군 M3호분), 검릉형행엽(연산동고분군 M3호분), 편원어미형행엽(연산동 고분군 M10호분). 부산박물관 제공
삼국시대에는 재갈 안장 등자와 같이 말을 탈 때 꼭 필요한 마구 외에도, 말의 가슴신용카드신용조회
걸이나 후걸이에 매달아 장식하는 ‘행엽(杏葉)’이 발달했다. 행엽은 단순한 치레를 넘어 신분과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행엽은, 초기에는 하트 모양의 ‘심엽형(心葉形)’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신라에서는 물고기 꼬리 모양을 본뜬 ‘편원어미형(扁圓魚尾形)’이 등장해 한층 더 화려한 장식이 가능해졌다.
담보대출한도
가야 지역에서는 끝이 칼끝처럼 뾰족한 ‘검릉형(劍菱形)’ 행엽이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검릉형행엽은 그 형태에서 이름을 얻었으며, 5세기 중엽 이후 대가야를 대표하는 말 장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행엽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각 지역의 문화적 자부심과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부산 연산동 고분군 M3호분에서 출토된 검릉형행엽물질명사
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약 8.6㎝ 크기의 이 유물은 철제 판 위에 얇은 금동판을 입혀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당시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과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검릉형행엽은 가야권의 독자적 문화와 신분의 상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부산 지역이 주변 세력과 활발히 교류하며 자신만의 문화를 발전시켰음카드발급
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부산박물관에서는 이 검릉형행엽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행엽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심엽형에서 편원어미형, 검릉형으로 이어지는 행엽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고대 부산 지역이 어떻게 자신만의 문화를 일구고, 또 주변과 교류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작은 말 장식 하나에도 시대의 미의식과 권력, 장인서울시소상공
의 솜씨가 스며 있다. 박물관에서 이 유물을 마주하는 순간, 부산이 지켜온 문화의 깊이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